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장 마리니(Jean Marigny))
이 책은 뱀파이어 전설의 이면을 다루면서 두 가지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하나는 이야기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반영이며, 이것은 전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신화나 전설은 오랜 시간을 거쳐 내려오는 만큼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될 여지가 많다. 자연히 그 모습은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띤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설이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기보다 옛날부터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바람직할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뱀파이어 전설이 변해가는 과정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우리가 흔히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상당수는 지극히 최근에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는 전설에 대해서 옛날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두산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설이란 "민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이야기" 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장 마리니는 뱀파이어 전설의 기원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의 뱀파이어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영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흡혈귀가 밤에만 나오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무덤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지역의 전설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흡혈귀의 특징이 과장되게 변형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거울속에 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흡혈귀의 보편적 속성이 아니다. 뾰족한 이빨도 늑대인간의 상징물이며, 흡혈귀는 희생자를 물지 않고 피부의 털구멍을 통해 피를 빠는 것을 더 선호한다. 박쥐가 흡혈귀를 상징하는 동물이 된 것도 영화 때문이다. 마늘로 흡혈귀를 퇴치하는 것도 보편적이기보다는 루마니아만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뱀파이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뱀파이어의 원형이 정립되기 시작한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큐라>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흡혈귀의 역사
유태인의 전승
흡혈귀에 관해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기원하여 유태인 전승으로 전해지고 있는 릴리트(Lilith)의 이야기다. 릴리트는 최초의 여성으로 아담과 동시에 창조되었다. 때문에 남성에게 복종할 의미가 부과되지 않았다. 고분고분하지 않는 릴리트와 아담간에 끊임없는 분란이 계속되었고, 릴리트는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죄를 짓고 사막으로 도망갔다. 그 동굴에서 악마들과 교접하여 수 많은 마귀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 역시 요람에 있는 아기의 피를 빨아먹었다고 한다. 피는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신성한 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월경을 이브의 후예인 여자들에게 내린 벌로 받아들일만큼 불순한 것이기도 했다. 세 천사가 릴리트를 잡으러 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아기들을 해치기 위해서 태어났음을 선언하고 세 천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이름이 적힌 부적이 있으면 아기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릴리트는 최초의 흡혈귀가 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 중국의 전설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피를 마시는 강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흡혈귀에 관한 전설은 인도, 말레이시아, 폴리네시아, 아즈텍, 에스키모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드라큘라와 그 아류에 속하는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는 유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흡혈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제9권을 보면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도와 줄 유령들을 불러내기 위해 양을 죽여 피를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자의 영들이 이 피를 마시고 잠시 힘과 활기를 되찾아 오디세우스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외에 아이들을 잡아먹거나 피를 빠는 괴물 라미아(Lamia)나 새의 몸을 가진 채 갓난 아기의 피를 빨아먹거나 잠자는 남자의 기를 빨아먹는 스트리게 등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육체를 갖고 있다기 보다는 정령에 불과한 존재였다.
구약성서의 흡혈귀
유태인 전승에는 릴리트라는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구약성서에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다만, 레위기 17장 14절에 따르면
"너희는 어떤 생물의 피도 먹지 마라.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 그것을 먹는 사람은 겨레 가운데서 추방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흡혈을 하는 사람이나 귀신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신약성서의 흡혈귀
신약성서에는 흡혈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예수가 12사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할 때 피의 상징적인 대체물인 포도주를 마셨다. 그는 그 포도주를 자신의 피, 즉 구원을 상징하는 매개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비유가 후대에 오해를 받았다. 사람들은 피가 재생의 능력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예수가 피를 흘림으로서 인류를 구원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오히려 악마숭배, 흡혈귀에 대한 믿음등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처녀의 깨끗한 피가 온갖 질병을 치유하고 나이를 덜먹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죽음후의 삶, 즉 <부활>의 개념은 기독교와 흡혈귀의 사이에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흡혈귀는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 즉, ‘육신 안으로 들어온 망령’의 개념이었다.
중세의 흡혈귀
성찬식 동안 예수의 육신과 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과 게르만 족들의 신앙이 뒤섞이면서 인간의 살을 먹는 축제가 거행되기도 했다. 샤를마뉴 대왕은 이들에게 가혹한 탄압을 가했으나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었다. 11세기가 되자 피를 다루는 의사와 악마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생기고, 무덤에서 걸어나온 시체들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12세기 말엽에 쓰여진 월터 맵의 "조신들의 농담"과 뉴버러의 윌리엄의 "잉글랜드 역사"에는 살아있는 시체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파문을 당하고 죽은 사람들이 밤마다 무덤에서 나와 생전에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살인을 저지른다고 한다. 그들의 관을 열어보면 시체가 하나도 상하지 않은 채 온전하고,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다. 이들을 완전하게 죽이는 방법은 칼로 찌른 다음 불태워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시체들에 관한 명칭이 없었기 때문에 "피를 빨아먹는 시체(cadaver sanguisugus)"라고 불렀다.
흑사병의 유행과 흡혈귀 신앙의 성행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인구의 1/3 가량을 잃었다. 특히 동부 프로이센, 실레지아, 보헤미아 지역의 피해가 컸다. 사람들은 시체를 땅에 묻기에 급급할 정도로 사망자가 많았다. 때문에 확실히 사망했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 중 일부는 무덤에서 땅 위에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이 흡혈귀라고 생각했다.
1462년 전에 납치당해서 유폐당함..(드라큘라)
15세기
1486년 교황 이노켄티우스 8세는 "사악한 마법"의 출판을 허용했다. 이것은 잉쿠부스(incubus)와 수쿠수스(succubus) 및 망령의 현상에 관한 논문이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초자연적 괴물들을 인정하자 흡혈귀에 대한 신앙이 더욱 급속히 번져나갔다. 15 세기에는 자신이 죽이고 있는 아이들의 숨 넘어가는 소리에 맞추어 옆에 있는 어린이 합창단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역사상 최악의 아동학대자였던 질 드 레와 재미로 수천명을 말뚝에 박아 놓곤 했던 잔혹한 폭군 블라드 테페스 왕자가 살아있는 흡혈귀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16세기
16c 후반에는 종교개혁 주창자들이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17C
17c 되면서 흡혈귀 신앙은 알바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부, 러시아 등지로 퍼져 나갔다.
17 세기 초에는 헝가리에서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백작이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 고문한 죄로 고발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고픈 욕망에서 젊은 여자들의 피를 목욕통에 가득 채우고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이일은 10년동안이나 자행되었는데, 발각되었을 당시 지하감옥에는 수십 구의 시체와 온몸을 바늘로 찔린 채 처참하게 살고있던 희생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16세기말 17세기 초에는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흡혈귀 미신이 퍼졌으며, 17세기 말에는 늑대인간이 죽은 다음 산 송장이 되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18C
18 초
1. 빈의 신문인 『다스 바이너리슈 디아리움』(1725년)에 실린,
프롬발트라는 이름의 오스트리아 정부 대표자가 작성한 공식 조서로 추정되는데, 당시에는 반피르 vanpir라는 철자
페테르 사건 이후.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오늘날 보편전으로 사용하는 흡혈귀를 가리키게 됨
2. 뱀파이어의 세 가지 특징, 즉 ‘살아 있는 시체’라는 점, 다른 이의 피를 빤다는 점, 그리고 피를 빨린 희생자 역시 뱀파이어가 된다는 점
정립
-1710 년 페스트가 동부 프로이센에 퍼졌을때 당국자들이 흡혈귀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페스트가 흡혈귀 때문에 퍼졌다며 공동묘지 무덤을 모조리 파헤치기도 했다. 이때에 (1725년) 헝가리 농부 페테르 플로고요비츠가 죽었다가 흡혈귀가 되어 키실로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8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기록에서 흡혈귀(vampire)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 vanpir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렇게 18 세기 들어서면서 구전되기만 하던 흡혈귀 이야기가 권위있는 학자, 의사, 성직자들에 의해 학구적 저작물로 탄생하게 된다. 교회는 흡혈귀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발표했으나 오히려 흡혈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도 했다. 볼테르같은 계몽주의 학자는 자신의 저서 <철학사전>에서 벌건 대낮에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주식 중개인, 사업가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흡혈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으며, 그들은 타락한 산자들이지 죽은자가 아니며, 공동묘지에 사는게 아니라 궁전같은 집에서 산다며 흡혈귀를 믿는 당시 현상을 신랄하게 조롱하기도 했다.
19C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흡혈귀에 신앙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의 확산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이미 유럽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승리가 전설 속의 흡혈귀를 이겼지만 그렇다고 상상의 세계에서까지 몰아낼 수는 없었다. 18세기 말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물질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낭만주의가 싹트게 된다. 그러면서 19세기로 접어들 무렵, 영국 낭만파들은 초자연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매혹적이고 신비에 싸인 과거에 대한 향수의 표현으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그 초기에 즉각 흡혈귀를 문학 속에 부활시켰다.
영국은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가 사랑받는 유령의 천국이었다. 산업혁명은 간접적으로 그 전통을 재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점잖은 빅토리아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공상의 세계를 멋진 탈출구로 본 것이다. 정당한 질서가 조롱당하고 확립된 도덕이 의문시되는 공포 이야기(드라큐라 등 뱀파이어 이야기)를 읽는 것이 일종의 집단적인 배출구가 되었다.
그들은 죽음을 저승에서 돌아온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는데 젊은 여인을 품에 안으면 황홀하고 쾌락적이지만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전통적인 전설에서는 성적인 의미가 전혀 없었지만,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같은 낭만주의 시가에서 흡혈귀는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의 상징이었다. 죽음과 쾌락을 동시에 안겨주고 희생자가 마땅히 희생되겠다고 동의한다는 면에서 가학피학의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19세기에서 20세기 유럽과 미국 문학에서 수없이 많이 쓰여졌다. 시가뿐 아니라 소설등의 산문을 통해 흡혈귀는 여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여성 흡혈귀와 여성 희생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동성애를 암시하기도 하는 바토리 여백작에게서 영감을 받은 <카르밀라>나, 19세기 흡혈귀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우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등이 그것이다.
흡혈귀의 부활 (낭만주의 18C 말~19C, 20C)
사그러들던 흡혈귀 신앙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8세기말에 싹트기 시작한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흡혈귀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곳프리트 아우구스트 뷔르거의 "레노레"(1773), 괴테의 "코린트의 신부"(1797) 등의 영향으로 죽음을 저승에서 돌아온 젊은 연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죽음을 저승에서 돌아온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는데 젊은 여인을 품에 안으면 황홀하고 쾌락적이지만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전통적인 전설에서는 성적인 의미가 전혀 없었지만,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같은 낭만주의 시가에서 흡혈귀는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의 상징이었다. 죽음과 쾌락을 동시에 안겨주고 희생자가 마땅히 희생되겠다고 동의한다는 면에서 가학피학의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19세기에서 20세기 유럽과 미국 문학에서 수없이 많이 쓰여졌다. 시가뿐 아니라 소설등의 산문을 통해 흡혈귀는 여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여성 흡혈귀와 여성 희생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동성애를 암시하기도 하는 바토리 여백작에게서 영감을 받은 <카르밀라>나, 19세기 흡혈귀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우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년)등이 그것이다. 낭만파 작가들은 흡혈귀 신화를 죽음도 불사할 만큼 담콤한 열정에 비유하는 은유로 사용했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크리스타벨"(1820), 존 키츠의 "잔혹한 미녀"(1818)와 "라미아(1820)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죽음과 쾌락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존재였다. 희생자도 그 희생에 동의하는 성인이었다. 이것은 흡혈귀와 희생자의 관계에 새도머조키즘(Sado-majochism)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낳았다. 색정적인 흡혈귀들은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 미국 문학에 수없이 등장했다. 보들레르의 "흡혈귀의 변신"(1866)의 여주인공, 테오필 고티에의 "죽은 연인들"(1836)에 나오는 클라리몽드, 조집 셰리던 르파뉴의 "카르밀라"(1871)에 나오는 카르밀라 등이 그런 존재였다. 대중적으로 흡혈귀를 유행시킨 사람은 바이런의 친구 폴리도리였다. 그는 "흡혈귀"(1819)를 "뉴 먼슬리 매거진"에 바이런의 이름으로 실었다. "흡혈귀"의 인기는 엄청나서 쇄를 거듭해 찍었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으며, 극장용 멜로드라마로 개작되었다.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1897년에 드디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공상 문학에 심취한 스토커는 폴리도리의 "흡혈귀"와 "흡혈귀 바니"를 읽었고 "카르밀라"나 독일작품 "신비한 이방인"도 읽었다. 흡혈귀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쓰고 싶었던 스토커는 흡혈귀 신화와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비밀 이교집단인 "황금빛 새벽"의 구성원으로 신비학과 마법에 심취하기도 했다. "드라큘라"가 이전의 흡혈귀 작품과 다른 점은 현재를 배경을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커는 시대를 19세기 말로 설정했으며, 최신 의학지식도 숱하게 도입하고 있다. 그는 대영박물관의 자료실에서 흡혈귀와 트란실바니아의 역사와 지리, 풍습, 민간전승에 관한 자료를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했다. 따라서 드라큐라는 전통적인 흡혈귀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참고 : 이때 스토커가 마늘, 십자가, 성수로 퇴치 되는 것과 같은 설정/ 그리고 드라큐라가 영국을 가고 싶어하고, 영국에서 퇴치되는 것은 윤리적인 영국국교회의 승리 혹은 합리적 이성의 승리라고 보는 관점도 있음-논문???/ 무대는 19C 말 근대. 런던을 배경. 당시 최신 의학 의식의 도입으로 사실성 구현. 초자연적 공포 이야기 좋아했던 19C빅토리아 시대 독자들 충족시킬 요소 빠짐없이 갖춤. 악에 대한 선의 승리. 미신과 과학, 이교와 기독교, 이기주의와 박애에서 후자의 승리. 시대적 가치에 부응. 동시에 암시적으로 강렬하게 표현된 에로티시즘은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지만 엄격한 규범과 도덕관에 갇혀 질식하던 독자들에게 보내는 은밀한 윙크 -
영화로의 이식
드라큘라가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만큼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스토커도 코난 도일처럼 존경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드라큘라가 영화화 되기 시작하자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피에 굶주인 잔혹한 괴물의 이미지는 영국식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셔록 홈즈와는 달랐다. 1922년 "노스페라투"를 필두로 수 많은 흡혈귀 영화가 만들어졌다. 나라도 영국,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에스파냐, 멕시코 심지어 필리핀에서까지 만들어졌다. 드라큘라 1세대는 노스페라투를 연기한 막스 슈레크와 드라큘라를 연기한 벨라 루고시였다. 이들의 연기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흡혈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8년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큘라 역을 맡았다. 리는 1세대와는 전혀 다른 흡혈귀 백작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리는 그 후로도 엄청난 수의 영화에 출연하여 드라큘라 역할을 맡았다. 여러 배우들이 드라큘라 역을 맡았지만 그들은 단지 리를 흉내내는 것에 그쳤다. 아직까지도 대중들이 갖고 있는 흡혈귀의 이미지는 리가 창조한 이미지다.
영화화 되며 생겨난 흡혈귀의 특징: 거울 속에 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 뾰족한 송곳니 (원래 늑대인간의 상징물), 박쥐가 흡혈귀를 상징하는 동물이 된 것도 영화 때문이다. 마늘로 흡혈귀를 퇴치하는 것도 보편적이기보다는 루마니아만의 방법이다.
뱀파이어 전설과 역사는 실제 관련이 있는가?
특정 사건, 심지어 역사적 실존인물이 뱀파이어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데 한몫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며, 유럽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우선 뱀파이어 미신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가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아직 뱀파이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그러한 존재에 대한 전설이 가히 황금기를 구가했던 17세기는 역병의 기세가 특히 무시무시했던 시기였다. 페스트는 사람뿐 아니라 가축까지 덮쳤고, 미신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던 곳에서는 페스트를 뱀파이어의 소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전염병이나 의심스런 죽음은 당연히 뱀파이어의 탓이라 생각했다. 18세기 초 세르비아에서는 며칠 간격으로 여러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생기기만 하면 온 마을이 말 그대로 집단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사람들은 원흉이 된 뱀파이어를 몰아내기 위해 묘지로 몰려가 무덤이란 무덤은 몽땅 파헤치곤 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 역사 속 최초의 진정한 뱀파이어라 할 수 있는 아르놀트 파올레와 페테르 플로고요비츠 사건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의심 많은 서유럽인들이 이들 사건에 호기심을 느껴 조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이런 집단적 믿음 외에도, 잔혹한 범죄로 온갖 소문을 돌게 하고 뱀파이어에 대한 공포를 퍼뜨리는 데 일조한 역사적 인물들도 있다. 그 진상이 사실이건 아니건 말이다. 뱀파이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코 역사속의 드라큘라, 와라키아 공 블라드 3세(1431 ~ 1476)일 것이다. 그는 ‘꼬챙이로 찔러 죽이는 자’라는 뜻의 체페슈로 불렸으며, 브램 스토커의 주인공 드라큘라의 모델이기도 하다. 블라드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브램 스토커가 자신의 주인공에게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하등 상관이 없다.
스토커에게 영감을 준 역사적 인물은 블라드 드라큘라뿐만이 아니라 더 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헝가리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1560 ~ 1614)가 그렇다. 용맹한 군이었던 그녀의 남편 페렌츠 나다스디는 언제나 전쟁터에 나가있었고, 카르파디아 산맥 근처, 헝가리 산악 지대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글자 그대로 독수리 둥지 같은 체이테 성에서 ~~~
오늘날에도 뱀파이어를 믿는가?
합리주의와 물질주의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믿음에 불과한 뱀파이어가 발붙일 장소는 우리 시대에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 쉽다. 계몽주의 시대는 전능한 이성의 이름으로 뱀파이어에 대한 믿음을 비난하기 위해 근대 세계에 이 존재를 드러냈고,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회에서 뱀파이어에 대한 전설은 공포보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 이러한 믿음은 지속되어 왔으며,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장담하는 만큼 합리적인 곳은 아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 심지어는 마법을 풀기 위해 자발적으로 점쟁이나 도사들을 찾아가지 않는가. 이처럼 비합리적인 것, 마술과 신비주의가 귀환하는 현상은 어쩌면 현대 생활의 일상적인 폭력과 날마다 마주치는 이 사회에서 개인에게 일종의 배출구가 되는지도 모른다.
… 이제 더 이상 믿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매혹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뱀파이어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기 때문이다. 피와 생명, 그리고 죽음은 사실 인간 관심사의 핵심을 차지하는 주제이자 우리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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